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따라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2008/05/20 21:27 2008/05/2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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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이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니지 못한 자는 근시안이라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옛 죄에서 깨끗해졌음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묵상]

신앙생활은 쉬운 생활이 아니다.

처음 신자가 될때의 뜨거움과 열성이 계속 꽃피어 나가면서 영적 성장을 하려면
오늘 성경 말씀처럼 세례로 깨끗해진 영과 육에 믿음을 심고
그 믿음은 넉넉히 베푸는 덕을 갖춰서 믿음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믿음위에 덕을 쌓으면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될지는 모르나 영적성장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라틴어 속담에도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더 알아야하고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믿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높일수록
또 지식을 쌓을수록 영적성장에 필요한 토대가 튼튼해진다.
그러나 지식은 교만을 부르기 쉬우므로 절제할줄 알아야 하며,
절제를 하기 위해서는 참을줄도 알아야 한다.

같은 신자라고 해도 주일 의무로서 미사참례만 하고 교회의 다른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적은 교우들은 아무래도 교리지식이라던지 신앙체험 나눔등에서 부족함이 있을 수 있으므로
교회의 가르침과 영 동떨어진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는 수도 있는데,
이때 상대방의 사정도 잘 모르고 함부로 나서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의 손상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 신앙생활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럴때의 답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루 한번이라도 주님의 지혜가 그 형제 자매에게도 머물수 있도록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일 빠짐없이 정해진 시간마다 올리는 끈기있는 기도는 굳은 믿음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혼자만의 조용한 묵상 기도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기도로 강해진 나는 세상으로 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를 바칠수 있어야 하며
또 나를 도와주는 손길에 감사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도와주고 나눠주는 생활은 믿음위에서 실천하는 형제애가 없다면 힘들 것이다.

마음속에만 머무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생겨나 손으로 실천하는 사랑,
때로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해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주님, 오늘 말씀처럼 믿음위에 다져진 사랑으로
주님의 일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는 제 삶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2007/11/17 21:39 2007/11/1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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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계획했던대로 일이 술술 풀릴 때에는 나 자신이 능력있고 잘 난 것 같은 착각속에 빠지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쁘겠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때로는 원하지 않게 일이 꼬이게 되어 답답하고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때, 화가 나고 당황하면서 침착하게 차분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행동부터 앞서려는 것이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 마흔이 넘어 건강을 생각하고 또 플로리다라고 하는 좋은 여건속에서 시작한 골프도 잘 될때에는 마치 골프에 도가 튼 것처럼 스스로에게 우쭐대다가도 컨디션이 안좋거나 라운드가 잘 풀리지 않는 날은 화도 나고 다음날 부터 당장 레인지로 달려가 맹연습을 할 궁리만 생각하게 된다.

골프이던 인생이던 이렇게 꽉 막히고 이리 저리 꼬였을 때, 그것으로부터 빨리 헤어나오려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다면 꼬인 것이 더 꼬여서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꼬였을때에는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본능과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행동을 자제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차분하게 나를 낮추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나를 낮추고 마음을 가라앉혀 생각속에 잠기면서 꼬여있는 당면 과제들을 지워나가다보면 자연스레 나를 만드신 이,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내신 분에 대한 생각이 들게되어 기도속에 나를 던지게 된다.

기도속에서 나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던져버릴수만 있다면, 몸부림치면 칠수록 조여드는 올가미 같은 인생의 꼬임도 조금씩 느슨해져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까?


2007/08/20 20:33 2007/08/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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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특성

2007/05/02 19:20 / 신앙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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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특성


거룩함의 첫째 특성은 바로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둘째 특성은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력으로 행동을 바꿀 수는 있지만 자신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노력은 입에 음식을 넣을 수 있지만 식욕을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잠자리에 들 수는 있지만 잠이 들게 하지는 못합니다.
억지로 칭찬 하게 할 수는 있지만 참된 존경심을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노력은 봉사 활동을 하게 할 수도 있지만 사랑과 거룩함을 만드는 힘은 없습니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억압일 뿐, 그것이 참된 변화와 성장은 아닙니다.
변화는 오직 깨달음과 이해로만 일어납니다.
자만심을 이해하면 자만심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겸손이라는 결과가 남습니다.
두려움을 이해하면 두려움은 녹아 버리고, 남은 상태가 사랑입니다.
집착을 이해하면 집착은 사라집니다.
그 결과가 바로 자유입니다.

거룩함에는 셋째 특성이 있습니다.
거룩함은 욕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룩하기를 원할 때,
바로 탐욕과 야망을 살찌워서 자신을 이기적이고 허황하며 속된 인간으로 만들게 됩니다.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
앤소니 드 멜로 신부 지음

묵상

꾸미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항상 하느님과 일치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것 또한 제 욕심이 될 것이니
주님, 저를 바르게 이끌어 주소서.
저는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그저 저를 맡길 따름입니다.
2007/05/02 19:20 2007/05/0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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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상대성

2007/02/26 04:49 / 신앙 생활
이른 아침 이런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아인쉬타인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우리는 경험상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느끼는 적이 많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욕망을 채우는 시간 (뭐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하고 싶은 일, 좋아 하는 것을 하는 것 등 등)은 빨리 지나간다. 반대로 욕망을 비우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묵상하는 시간 등등)은  그것이 만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더디게 갈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오래 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을 더 늘릴 것이 아니라 더디게 가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신에게서 부여받은 시간에 한계가 있다면 그 시간이 천천히 가도록 쓰면 오래 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때로는 그 시간이 너무 지겨울지도 모르므로 시간이 빠르게 가는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2007/02/26 04:49 2007/02/2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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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의 기도

이 사진을 보면 작년과 올해 초 사순때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다녔던 떼제의 기도시간이 생각난다. (영어로는 타이제라고 발음하던데 불어인 Taiz?를 영어식으로 읽어서 그런 것 같다.)
커다란 성당 한켠에 불을 모두 끄고 소리가 날까봐 신발도 벗고 (미국 문화에선 신발 벗을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한시간 동안 노래로 기도하고 묵상하고 또 촛불이 둘러쌓인 십자가 앞에 촛불 봉헌도 하면서 깊은 침묵속에서 울려나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출처: http://www.mariasarang.net/files/bbs_di ··· F%84.jpg)

참고링크
[1] http://www.taize.fr/

2006/11/09 21:34 2006/11/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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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노래. 다윗]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머리 위의 좋은 기름 같아라.
수염 위로, 아론의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옷깃 위에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온의 산들 위에 흘러내리는 헤르몬의 이슬 같아라.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

[묵상]
내가 다니는 미국 성당에서 피정을 갖고 또 일주일에 한번씩 계속되는 모임에 나간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그저 주님께서 부르시면 "Yes, Lord. Here I am, Lord."의 마음으로 아무생각 없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며 퇴근후 지친 몸을 이끌고 참석하는 모임이지만
많은 형제들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는 기쁨이 그 모임에 계속 나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조금전 받은 이메일 한통이 오늘 모임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또 주님의 증거자로 이 세상을 살고 싶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 준다.


Looking forward to being with you all this evening!

As it reads in Psalm 133:

"See how good it is, how pleasant, where brothers dwell as one!"

God bless you all!     Ron

2006/09/14 11:36 2006/09/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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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여 부르짖으니, 주님, 저에게 대답하소서.

당신의 법령을 따르오리다.

당신께 부르짖으니 저를 구하소서.

당신의 법을 지키오리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움을 청하며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

제 눈이 야경꾼보다 먼저 깨어 있음은 당신 말씀을 묵상하기 위함입니다.

당신 자애에 따라 제 소리를 들으소서.

주님, 당신 법규에 따라 저를 살리소서.

부정을 뒤쫓는 자들이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에서 멀리 있는 저들이.

주님, 당신께서는 가까이 계시며 당신의 계명은 모두 진실입니다.

제가 일찍부터 당신의 법을 아니 당신께서 그것을 영원히 세우신 까닭입니다.


[묵상]
오늘 아침기도문 중에 있던 아침시편인데 "새벽부터 일어나 도움을 청하며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라는 부분에서 내가 왜 아침부터 기도를 올리는가에 대한 답을 들은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소성무일도를 바친지 꽤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처음의 뜨거움은 사라지고 건조해지고 아니면 그냥 시간되면 올리는 기도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오늘 시편 말씀속에서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라는 대목에서 다시 처음 성무일도 바칠때의 뜨거운 가슴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주말 새벽에 일찍 일어나 깨끗히 목욕하고 올리는 아침기도, 이것보다 오늘 하루를 값지게 할 것은 없을 것 같다.
2006/08/19 07:26 2006/08/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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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셨다. 아멘.

[묵상]
주일 미사중 주임 신부님께서 복음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여느 때와는 다르게
"A reading from the holy Gospel according to the conclusion of Mark."
이라고 마르코 복음의 "conclusion (결론; 끝)"이 라고 하시는 말씀이 크게 들렸습니다.
또 오늘 미사 1독서인 사도행전 시작에서 (사도 1,1-11) 루카 성인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몇일이 지나 주님의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시면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시작되는 마르코 복음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 분부의 말씀과 그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간에까지 생생하게 살아 움직임을 증언하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복음 말씀 묵상하며 기도 바칩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과 사랑이신 주님께 부족한 저를 대신하여 탄식하며 빌어주시는 성령님께 간구하오니
오늘 복음 말씀처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언제나 늘 제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주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2006/05/28 10:27 2006/05/2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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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묵상]
나는 무엇을 위해서 왜 사는가라는 문제는 조금만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주제입니다.
한참 젊었을때에는 왜 사는가 무엇을 사는가에 대해서 답도 많고 희망도 많았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많았던 꿈과 목적들이 어느덧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나 작고 때로는
무엇인지도 모르게 변해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러한 나의 불완전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이므로, 우리 삶의 목표와 방향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가지고 또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부터 해방되고,
허황된 꿈과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 있는 형제중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당신에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려주시고 또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06/05/07 10:31 2006/05/07 10:31
Posted by 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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