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묵상]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만드신 안식일과 주님의 부활을 찬미하는 주일이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께서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이 세상속에서 바쁘게 사느라 정신 없는 나에겐 마치 뜨거운 태양 빛 아래 삶의 터전 한가운를 엿새를 바쁘게 헤매이다가 이레날 하느님께서 내 눈앞에 펼쳐 놓으신 오아시스와 같다.
오아시스의 시원한 샘터에서 하느님 생명의 말씀으로 갈증으로 타오르는 내 영혼의 목을 적시고 주님께서 기억하며 행하라고 말씀하시며 내려주시는 생명의 빵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싶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묵상]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습과 닮게 만드시고 축복을 내려주셨다. 이 축복은 나만 받은 축복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노인이나 젊은이, 많이 가진자나 그렇지 못한 자 모두에게 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참 좋으셨던 하느님께서 골고루 내려주신 축복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모습과 닮게 창조된 우리들은 존엄하며, 우리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서로 서로에게 나눠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경우 하느님의 눈이 아니라 나의 좁은 눈으로 다른 형제,자매를 보았는지 반성해 본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던 이 세상을 하느님과 닮게 만들어진 내 눈을 가지고 아릅답게 보고 싶다.
이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니지 못한 자는 근시안이라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옛 죄에서 깨끗해졌음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묵상]
신앙생활은 쉬운 생활이 아니다.
처음 신자가 될때의 뜨거움과 열성이 계속 꽃피어 나가면서 영적 성장을 하려면 오늘 성경 말씀처럼 세례로 깨끗해진 영과 육에 믿음을 심고 그 믿음은 넉넉히 베푸는 덕을 갖춰서 믿음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믿음위에 덕을 쌓으면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될지는 모르나 영적성장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라틴어 속담에도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더 알아야하고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믿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높일수록 또 지식을 쌓을수록 영적성장에 필요한 토대가 튼튼해진다. 그러나 지식은 교만을 부르기 쉬우므로 절제할줄 알아야 하며, 절제를 하기 위해서는 참을줄도 알아야 한다.
같은 신자라고 해도 주일 의무로서 미사참례만 하고 교회의 다른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적은 교우들은 아무래도 교리지식이라던지 신앙체험 나눔등에서 부족함이 있을 수 있으므로 교회의 가르침과 영 동떨어진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는 수도 있는데, 이때 상대방의 사정도 잘 모르고 함부로 나서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의 손상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 신앙생활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럴때의 답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루 한번이라도 주님의 지혜가 그 형제 자매에게도 머물수 있도록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매일 빠짐없이 정해진 시간마다 올리는 끈기있는 기도는 굳은 믿음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혼자만의 조용한 묵상 기도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기도로 강해진 나는 세상으로 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를 바칠수 있어야 하며 또 나를 도와주는 손길에 감사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도와주고 나눠주는 생활은 믿음위에서 실천하는 형제애가 없다면 힘들 것이다.
마음속에만 머무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생겨나 손으로 실천하는 사랑, 때로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해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이라는 생각이다.
주님, 오늘 말씀처럼 믿음위에 다져진 사랑으로 주님의 일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는 제 삶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묵상] 사람은 참 바뀌기 힘든 존재임을 늘 느끼고 있다. 특히 이 맘때쯤이면 새해 벽두에 스스로 다짐했던 새해에는 지키자고 하였던 것들이 많이 무너져 있음도 보게된다. 어쩌면 내가 바뀐다는 것은 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넣어주시는 부드러운 살과 같은 마음과 새로운 영이 있어야 새롭게 바뀐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새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란 결국 내 안에 오래동안 침전되어서 돌처럼 굳어져 버린 습관, 오래되어 굳어진 생각들과 행동 양식, 그리고 시기와 질투 등으로 닫혀진 마음때문일텐데 그런 딱딱한 돌과 같은 마음이 녹아내려야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머리 위의 좋은 기름 같아라. 수염 위로, 아론의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그의 옷깃 위에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온의 산들 위에 흘러내리는 헤르몬의 이슬 같아라.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
[묵상] 내가 다니는 미국 성당에서 피정을 갖고 또 일주일에 한번씩 계속되는 모임에 나간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그저 주님께서 부르시면 "Yes, Lord. Here I am, Lord."의 마음으로 아무생각 없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며 퇴근후 지친 몸을 이끌고 참석하는 모임이지만 많은 형제들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는 기쁨이 그 모임에 계속 나가게 해주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조금전 받은 이메일 한통이 오늘 모임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또 주님의 증거자로 이 세상을 살고 싶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 준다.
Looking forward to being with you all this evening!
As it reads in Psalm 133:
"See how good it is, how pleasant, where brothers dwell as one!"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더라도 주 우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도 시험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이사악을 어떻게 시험하셨는지, 그리고 야곱이 시리아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외숙 라반의 양 떼를 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시려고 그들에게 불 같은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냥 보복을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가까운 이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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